[데일리엔뉴스 이종성 기자] 1919년 3월, 수원에서 20여 차례에 걸쳐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인 김세환(1889~1945)이 있었다.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교육과 체육 발전에도 헌신하며 수원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이다.

김세환, 수원의 독립운동과 교육을 이끈 지도자
김세환은 1889년 수원에서 태어나, 일본 중앙대학에서 신학문을 익혔다. 이후 수원으로 돌아와 수원상업강습소(현 수원중·고교)와 삼일여학교(현 매향중)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펼쳤다.
1919년 2월, 그는 YMCA 간사 박희도를 통해 3·1운동 준비 모임에 참여했다. 수원과 충남 지역의 조직 책임자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계획했으나, 3월 1일 서울 도착이 늦어 독립선언서 서명은 하지 못했다.
이후 만세운동에 참여한 그는 3월 13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법정에서 "조선 독립운동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20년 출소한 뒤에는 교사로 복직하지 못하고 곡물상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신간회 수원지회장, 수원체육회장을 맡아 지역사회에서 민족운동을 주도했으며, 1945년 광복 42일 후 서거했다.

수원 3·1운동,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된 독립의 불꽃
1919년 3월 1일, 수원에서는 방화수류정에서 횃불 시위가 열렸다. 김세환의 지시로 학생과 종교인들이 모였고, 성곽 일대의 봉화대로 신호를 보내며 독립의지를 밝혔다. 이후 수원에서는 3월부터 4월까지 21차례에 걸쳐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3월 16일에는 서장대와 연무대에서, 3월 21일에는 동탄면 오산리에서, 3월 23일에는 수원역에서 소작농 700명이 참여한 시위가 열렸다.
3월 29일에는 화성행궁 앞에서 기생 김향화와 예기조합원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4월 3일에는 수원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이 우정면과 장안면에서 벌어져 2500여 명이 참여했다. 군중들은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식민 행정 서류를 불태웠다.

수원박물관, 광복 80주년 맞아 김세환 조명 기획전 개최
수원시는 광복 80주년과 김세환 서거 80주기를 맞아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항거, 수원 1919’ 특별기획전이 오는 6월 29일까지 수원박물관에서 열리며, 수원 3·1운동의 전개도와 유물 40여 점을 전시한다.
지난 1일에는 수원박물관에서 106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려 시민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외쳤다. 또한 김세환 서거 80주기 헌화소가 마련돼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수원의 독립운동가들을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며 존경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