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엔뉴스 이종성 기자] 4월 25일 토요일 새벽 5시.
수원에서 먼저 출발했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었다. 도시는 조용했다. 도로도 한산했다. 차 안에는 하루를 먼저 시작한 사람만 느끼는 묘한 활기가 있었다.
이번 길은 단순한 1박 2일 여행이 아니었다. 1985년 계룡산 갑사에서 처음 경험했던 캠핑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텐트 하나, 버너 하나, 코펠 하나에도 마음이 뛰었다.
20대 초반 이후 캠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길을 나선 것은 30여 년 만이었다.
그래서 출발 전부터 마음이 조금 달랐다. 익숙한 여행 같았지만 낯설었다. 오래 덮어둔 기억을 다시 꺼내는 기분이었다.
오전 5시 40분께 향남에 도착했다. 일행과 만났다. 짐을 싣고 인원을 확인했다. 목적지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청량산 수원캠핑장이었다.
25일 오전 향남에서 출발했다. 봉화 청량산 수원캠핑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1박 2일 캠핑 여정을 앞두고 이른 시간부터 대화가 이어졌다.
오전 6시.
향남을 출발했다. 차 안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천장 조명까지 여행 분위기를 더했다.
평택제천간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말이 끊기지 않았다. 18살 소년들처럼 조잘조잘 웃고 떠들었다. 긴 이동도 지루하지 않았다.
청량산 수원캠핑장은 수원시와 봉화군의 상생협력 사업으로 조성된 공공형 캠핑장이다.
봉화군이 청량산 캠핑장 운영권을 수원시에 넘겼고, 수원시는 시설을 개선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양 공간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수원시민과 봉화군민에게는 이용료 할인 혜택도 적용된다. 수원 시민에게는 자연 속 쉼터가 생겼다. 봉화 지역에는 체류형 방문객이 늘어나는 구조다.
오전 7시 30분쯤 휴게소에 들렀다. 아침은 라면과 김치찌개, 커피로 가볍게 해결했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잠이 달아났다. 커피 한 모금에 다시 길 위의 힘이 붙었다.
다시 영주 방향으로 달리던 중 대게 이야기가 나왔다. 그 말 한마디에 일정이 바뀌었다. 차는 울진항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어 죽변항까지 움직였다.
원래 계획에는 없던 바다였다. 하지만 오래 기억되는 여행은 종종 이렇게 샛길에서 만들어진다.
25일 오전 봉화 청량산 수원캠핑장으로 향하던 중 울진 죽변항에 들렀다. 맑은 하늘 아래 항구와 바다가 펼쳐졌다. 일행은 이곳에서 대게와 맥주로 점심을 해결한 뒤 청량산으로 이동했다.
죽변항에서 대게를 마주했다.
커다란 쟁반 위에는 대게 다리와 몸통이 푸짐하게 놓였다. 껍질은 붉었다. 속살은 촉촉했다.
대게 살은 달았다.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맥주 한 잔이 점심을 완성했다. 손에는 게살이 묻었다. 입안에는 바다의 단맛이 남았다. 이날 첫 번째 강한 장면이었다.
점심을 마친 뒤 다시 청량산으로 향했다.
바다에서 산으로 넘어가는 길은 묘했다. 조금 전까지 항구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산자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량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자 시야가 먼저 열렸다.
넓은 주차장 너머로 청량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산은 짙은 초록으로 깊어졌다. 군데군데 드러난 암벽은 청량산 특유의 단단한 인상을 만들었다.
하늘은 맑고 높았다. 도로변 철쭉과 나무들도 봄빛을 더했다. 긴 이동 끝에 마주한 풍경은 “이제 제대로 산에 왔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청량사로 가는 길은 초록빛이 더 깊었다.
일주문 앞에는 푸른 숲이 하늘을 가릴 만큼 우거졌다. 형형색색의 연등이 길을 따라 걸려 있었다.
산길은 조용했다. 햇빛은 강했지만 숲 그늘은 시원했다.
청량사에 들어서자 시간이 느려졌다.
돌계단과 축대, 전각, 연등이 산비탈을 따라 이어졌다. 붉은 철쭉과 초록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요한 절집과 청량산의 산세가 긴 이동으로 달아오른 몸을 잠시 눌러줬다.
그 순간 1985년 계룡산 갑사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오래전 산사 주변에서 맞던 바람, 밤공기, 낯선 잠자리의 기분이 겹쳤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산이 주는 감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무 냄새와 돌계단의 질감, 절집의 고요함이 30여 년 전 기억을 천천히 불러냈다.
청량사 아래로 내려오면 낙동강 줄기와 절벽이 시야를 붙잡는다. 물은 잔잔하게 흘렀다. 강 건너 암벽은 층층이 서 있었다.
푸른 산과 바위, 강물이 한 장면 안에 들어왔다. 청량산이 왜 오래 기억되는 산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청량사에서 나와 청량산 수원캠핑장으로 이동했다.
관리사무소는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입구에는 캠핑장 안내도와 예약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예약한 6인용 카라반으로 향했다.
봉화 청량산 수원캠핑장 글램핑 구역은 숲길을 따라 조성돼 있었다. 글램핑 시설과 카라반이 나란히 배치됐다. 청량산 자락과 맑은 하늘이 어우러져 산속 캠핑장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카라반은 청량산 자락을 따라 줄지어 놓여 있었다.
뒤로는 산 능선이 병풍처럼 감쌌다. 앞쪽으로는 도로와 나무가 이어졌다. 산 밑으로는 낙동강 줄기가 조용히 흘렀다. 햇빛은 카라반 앞마당까지 환하게 들어왔다.
카라반 내부는 예상보다 넓고 깔끔했다.
실내에는 2인 침대 2개와 1인 침대 2개가 갖춰져 있었다. 6명이 머물 수 있는 구조였다.
침구도 정돈돼 있었다. 긴 이동 뒤 바로 누워 쉬기 좋았다. 창밖으로는 나무와 산자락이 들어왔다.
거실에는 소파와 테이블, TV가 마련돼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앉자 하루 숙소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은은한 조명도 좋았다. 밤에는 실내 분위기가 더 아늑해질 공간이었다.
주방도 실속 있게 갖춰져 있었다.
싱크대, 전자레인지, 냉장고, 전기포트가 있었다. 식기와 기본 조리도구도 준비돼 있었다. 많은 장비를 챙기지 않아도 간단한 음식은 바로 차려 먹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캠핑의 불편함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쪽에는 그때의 투박한 재미가 남아 있었다.
카라반 안에는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었다.
세면대, 변기, 샤워 공간이 한 공간에 정리돼 있었다. 밤이나 이른 아침에 외부 공용시설을 오가지 않아도 되는 점이 편했다. 수건과 드라이기까지 완비돼 있었다.
공용시설도 관리 상태가 좋았다.
별도 건물에는 화장실과 샤워장이 마련돼 있었다. 샤워실은 유리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다. 바닥과 벽면도 깔끔했다. 탈의 공간에는 개인 사물함이 갖춰져 있었다.
가족 단위 이용객이나 여러 명이 함께 온 팀에게도 불편이 크지 않아 보였다.
짐을 정리한 뒤 청량산도립공원 주차장 근처 시골 슈퍼에 들렀다. 바비큐 재료와 다음 날 아침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반찬, 부침개, 간식, 주류, 생수까지 하나씩 담았다. 도시의 대형마트와는 다른 정겨움이 있었다.
슈퍼도 캠핑장이 생긴 뒤 달라졌다고 했다. 매장에는 삼겹살과 바비큐용 식재료, 숯, 일회용품, 간식, 주류, 생수 등 캠핑객이 바로 찾는 물건들이 늘었다.
슈퍼 주인은 “캠핑장이 생기고 나서 손님들이 찾는 물건이 달라졌다”며 “삼겹살도 들여놓고, 바비큐에 필요한 물건들도 갖춰놓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매출이 크게 뛰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게 운영에는 보탬이 된다”며 “손님은 주로 주말이나 휴일에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산 아래 작은 슈퍼의 변화는 캠핑장이 지역에 만든 조용한 효과처럼 보였다. 머무는 사람이 생기면 주변 가게의 품목이 바뀐다. 하루 매출도 조금씩 달라진다.
수원시가 말한 상생은 거창한 구호만은 아니었다. 작은 진열대의 변화로도 확인됐다.
캠핑장 주변에서는 취나물전과 함께 가볍게 한잔했다. 향긋한 취나물 향이 입안에 퍼졌다.
막 부쳐낸 전의 따뜻함이 산속 공기와 잘 맞았다. 긴 이동 뒤 마시는 한 잔은 더 깊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본격적인 저녁 준비가 시작됐다. 이날의 주인공은 소 살치살과 육회였다.
숯불 위에 살치살이 올라갔다. 고소한 냄새가 카라반 앞까지 퍼졌다. 겉은 노릇하게 익었다.
속은 부드럽게 남았다.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낮의 피로가 풀렸다. 육회는 차갑고 고소했다. 술잔이 오갔다. 웃음도 따라왔다.
그 웃음 속에는 오래전 캠핑의 기억도 섞여 있었다.
20대 초반 이후 30여 년 만에 다시 마주한 캠핑은 젊은 날의 복사본은 아니었다. 대신 세월이 쌓인 만큼 더 깊었다.
불편함을 견디던 캠핑에서 편안함을 누리는 캠핑으로 바뀌었지만, 함께 먹고 웃고 밤공기를 나누는 본질은 그대로였다.
밤이 깊어지자 청량산 수원캠핑장은 조용해졌다. 카라반 안의 불빛은 따뜻했다. 밖에서는 바람 소리가 낮게 들렸다.
대게를 먹으러 바다까지 돌아간 일, 청량사에서 잠시 멈췄던 시간, 청량산도립공원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낙동강 절벽 앞 풍경, 슈퍼 주인과 나눈 말, 카라반 앞에서 구운 고기 냄새가 하루를 채웠다.
다음 날 아침.
산속 공기가 먼저 잠을 깨웠다. 몸은 조금 무거웠지만 기분은 가벼웠다. 간단히 정리한 뒤 아침을 준비했다. 메뉴는 라면이었다.
캠핑 다음 날 라면은 늘 옳다.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이면 전날의 술기운도 잠기운도 한 번에 풀린다.
1985년 계룡산 갑사에서 먹었던 투박한 아침도 떠올랐다. 그때의 라면은 허기를 달랬고, 이번 라면은 시간을 이어줬다.
오전 7시 30분부터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카라반 내부를 정리했다. 쓰레기도 챙겼다.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두고 숙소를 처음 상태처럼 정돈했다. 하룻밤 머문 공간이었지만 쉽게 떠나기 아쉬웠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향남으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중간 휴게소에서 커피로 한 번 더 쉬어가기로 했다.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1박 2일 캠핑이 아니었다.
새벽 수원 출발, 향남 합류, 즉흥적인 울진 바다행, 죽변항 대게와 맥주, 청량산도립공원의 탁 트인 산세, 청량사의 고요함, 낙동강 절벽 풍경, 6인용 카라반의 편안함, 산속 바비큐가 모두 들어간 꽉 찬 여정이었다.
무엇보다 30여 년 만에 다시 캠핑이라는 이름을 꺼낸 시간이었다. 1985년 계룡산 갑사에서 시작된 첫 캠핑의 기억은 봉화 청량산에서 다시 이어졌다.
그때의 젊음은 지나갔지만, 길 위에서 웃고 산속에서 머무는 마음은 아직 남아 있었다.
봉화 청량산 수원캠핑장은 하루를 머무는 장소였다. 동시에 수원과 봉화가 만든 상생의 현장이었다.
길 위에서 웃고, 항구에서 먹고, 절집에서 쉬고, 산속 카라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작은 슈퍼의 진열대에서도 캠핑장이 만든 변화를 확인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을 여행이었다.
























